[시애틀여행후기] Rattlesnake Ledge 트레일

 

---

 

비행기 창밖, 구름 위로 솟은 두개의 산

시애틀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운이 좋게도 창가 쪽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는 국제선보다 좀 낮게 비행을 하기 때문에 지나가고 있는 곳의 지형을 관찰하는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시애틀에 가까이 오면 늘 짙은 구름 위를 지나가게 되는데,  오늘은 두꺼운 구름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두 개의 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멋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엔 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애틀 근교를 하이킹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시애틀 여행엔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ount Rainier & Mount St. Helens

 

 

가까이 보이는 납작한 산은 마운트 세인트헬렌스(Mount St. Helens)이고, 그 너머 높고 뾰족한 산은 마운트 레이니어(Mount Rainier)입니다. 둘 다 워싱턴 주의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북서 태평양 지역을 따라 뻗어 있는 캐스캐이드 산맥(Cascade Range)의 중요한 산들이죠. 이 산맥은 단순한 산줄기가 아니라, 현재도 지질 활동이 활발한 화산 지대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4월인 지금도 눈으로 덮여 있고, 여름이 되면 일부분 눈이 녹아내린다고 하네요.

---

마운트 세인트헬렌스 – 뚜렷한 상처를 간직한 산

마운트 세인트헬렌스는 지금의 모습만 보면 그저 평평한 화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산은 1980년 5월 18일,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화산 폭발 중 하나를 일으켰던 산입니다. 폭발 전에는 해발 약 2,950m에 달했지만, 폭발로 인해 산의 북쪽 면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현재는 2,550m로 낮아졌습니다.

 

그 폭발은 단순히 화산재만 뿜어낸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산 전체가 옆으로 폭발하는 특이한 유형의 분화였고, 초당 수백 킬로미터 속도로 흘러내린 화산재와 이류는 주변 생태계를 초토화시켰죠. 분화 이후 산 정상에는 커다란 칼데라가 형성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는 다시 화산 돔(lava dome)이 천천히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여전히 활화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지진 활동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 산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죠. 자연은 회복 중이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선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산은 어딘가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

마운트 레이니어 – 북서부의 왕관 같은 존재

그보다 멀리, 고요하게 솟아 있는 마운트 레이니어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산입니다. 해발 4,392m, 워싱턴 주는 물론 미국 본토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산이죠. 시애틀에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도시 곳곳에서 이 산을 볼 수 있습니다. 뾰족한 원추형 실루엣에, 늘 눈과 얼음이 덮여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 산의 특별함은 단지 높이에만 있지 않습니다. 25개의 빙하가 이 산에 분포하고 있어, 미국 본토에서 가장 많은 빙하를 가진 산으로도 알려져 있죠. 빙하가 많다는 것은 곧 물의 원천이자, 위험 요소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산이 활동을 재개한다면, 녹아내리는 빙하와 함께 거대한 이류(lahar)가 발생해 하류 지역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니어는 현재 ‘휴화산’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여전히 산 내부에서는 지열 활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서는 얼음 밑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거나, 따뜻한 지대에서 빙하가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도 포착되곤 하죠.

 

이 산을 보면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위험을 품은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이 가진 위엄. 마운트 레이니어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느껴지곤 하죠.

 

---

이 두 산을 하늘 위에서 마주한 순간, 저는 뭔가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 시애틀 여행의 둘째 날은 Rattlesnake Ledge 트레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웅대한 자연을, 이제 두 발로 직접 밟아볼 시간이었죠.  아마 산맥 가장자리쯤 되겠죠. 😉

 

🪴

 

Rattlesnake Ledge – 숲길을 따라 호수를 품은 절벽 위로

시애틀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차를 몰고 도시를 벗어났습니다. 목적지는 Rattlesnake Ledge. 시애틀에서 차로 약 45분, 동쪽으로 30마일 정도 떨어진 North Bend 근처에 있는 이 트레일은, 가볍게 걸을 수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전망을 선사해주는 곳으로 유명하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자, 공기의 질감부터 달라졌습니다. 습기가 살짝 머무는 공기 속에 흙과 나무, 이끼와 풀잎의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죠. 이 트레일은 Cedar River Watershed(시더 강 유역 보호구역)에 속해 있어, 생태적으로도 보호받고 있는 아주 풍요로운 지역입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 – 태평양 북서부의 대표 식생

Rattlesnake Ledge를 걷다 보면, 마치 북서부의 숲 교과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도글라스 퍼(Douglas fir)입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한 나무이자, 목재로도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침엽수죠. 그 외에도 서양 전나무(Western Hemlock), 시더(Cedar), 그리고 곳곳에는 레드 앨더(Red Alder)도 보입니다.

 

땅에는 두툼한 이끼와 고사리가 깔려 있고, 봄부터 여름 사이에는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나 숲길에 색을 더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나무만 많은 곳이 아니라, 생명이 층층이 겹쳐 있는 숲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늘 위로는 키 큰 나무가 햇빛을 가리고, 그 아래에는 풀이, 그 밑에는 이끼가, 그리고 그 아래엔 촉촉한 흙이 있습니다.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숲이 켜켜이 반응하는 기분이랄까요.

Rattlesnake Lake – 숲 아래 고요히 누운 호수

트레일의 시작점 바로 옆에는 푸르른 Rattlesnake Lake(래틀스네이크 호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름은 조금 위협적이지만, 실제로는 독사 한 마리 없는 평화로운 호수입니다. 호수 주변은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 하이킹을 하지 않더라도 피크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물가에 앉아 멍을 때리기에도 참 좋은 곳이죠.

 

이 호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이지만, 매우 자연스럽고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사람들이 수영하거나 카약을 타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고,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벽 전망대에서 내려다볼 때 이 호수가 만들어내는 장면은 정말 잊기 힘든 풍경이에요.

트레일 끝, 절벽 위의 풍경

올라가는 길엔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진 물방울들 사이를 걸었습니다. 마치 숲 전체가 가볍게 숨을 쉬며, 저를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었죠. 숨은 차고, 다리는 조금 무겁지만, 이런 날씨 속의 하이킹은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트레일은 꾸준한 오르막으로 이어지지만, 비교적 무난한 길입니다. 적당히 숨이 차오를 즈음, 숲이 열리고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바로 이곳이 Rattlesnake Ledge의 하이라이트죠.

 

발아래로는 Rattlesnake Lake가 내려다보이고, 멀리에는 Cascade Mountains의 능선들이 겹겹이 펼쳐집니다. 날씨가 좋다면 레이니어 산의 희미한 실루엣이 저 멀리 보이기도 하죠. 바람은 시원하고, 절벽 끝에 서 있으면 마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잠시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정상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옷 사이로 불어오는 찬 바람에 괜히 한번씩 움츠러들게 되더군요. 그 순간 문득, ‘다음에는 꼭 장갑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뜻하게 입는 것도 하이킹에서 중요한 기술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배웠죠.

 

정상 근처에는 작은 다람쥐도 있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람쥐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더군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민 간식을 받아먹는 다람쥐의 모습은, 마치 이곳의 마스코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절경을 즐깁니다. 묵묵히 앉아 사색하는 사람도 있고,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죠. 저는 그저 바위에 앉아, 방금 전까지 비행기 창밖에서 봤던 두 산과 이 풍경이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곱씹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트레일’이라는 단어가 가진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깨주는 곳입니다. 너무 험하지도, 너무 쉬워서 지루하지도 않죠. 도심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서 이만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시애틀이 가진 아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의 숲, 그리고 다정한 하산길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이제 다시 숲으로 내려갈 시간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발걸음에 여유가 생기니 주변의 풍경도 더 잘 보이더군요.

 

이른 봄비가 부슬부슬, 조용히 숲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의 숲은 왠지 더 포근하게 느껴지죠. 공기는 더 촉촉했고, 나뭇가지 끝에는 물방울이 매달려 반짝였으며, 바닥에는 떨어진 꽃잎들이 물에 젖어 고요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꼭 누군가 일부러 흩뿌려 놓은 듯한 풍경이었어요.

 

걷다 보면 올라가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들 중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많았어요. 비에 젖은 털을 흔들면서도 신나게 걷는 강아지들, 그리고 그런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숲 속에서 만난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이날의 트레킹은 비가 오고, 안개가 끼고, 바람도 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꼭 맑고 화창한 날이 아니어도, 산은 늘 그 자체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Rattlesnake Ledge는 제게 ‘완벽한 하이킹’이 아니라, ‘진짜 자연을 만난 하루’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시애틀에 오게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이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번엔 장갑과, 여유와, 또 다른 계절을 품고 말이죠.

---

벨뷰에서 만난 모던 베트남 음식

Monsoon

 

 

하이킹으로 하루를 가득 채운 뒤, 비도 맞고 해서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은 벨뷰 중심가에 자리한 Monsoon. 이름부터 어쩐지 오늘의 날씨와도 어울리는 느낌이죠. 비가 내리는 날, 조용한 창가에 앉아 따뜻한 국물 요리를 먹는 상상—Monsoon은 바로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Monsoon은 전통 베트남 요리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레스토랑입니다. 메뉴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살아 있고, 분위기 역시 세련되고 차분합니다. 시애틀 지역에 본점이 있고, 벨뷰 지점은 조금 더 넓고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하죠.

 

추천 메뉴

• Claypot Catfish: 전통 베트남식 카라멜 생선 조림인데요, 짭짤하고 달콤한 소스에 촉촉하게 익은 메기 살이 밥과 너무 잘 어울립니다.
• Shaking Beef: 큼직한 소고기 조각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단짠단짠의 미학이 살아 있는 요리죠.
• Pho: 맑고 깊은 국물의 쌀국수는 비 오는 날엔 특히 더 맛있게 느껴져요. Monsoon의 포는 육수의 깊이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 Brussels Sprouts with Pork Belly: 이건 거의 시그니처처럼 인기가 많은 사이드입니다. 바삭한 숙주와 삼겹살 조합이 중독성 있어요.

분위기와 공간

 

내부는 우드 톤과 미니멀한 조명이 어우러져 아주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데이트, 가족 모임, 혹은 혼자 조용히 식사하기에도 잘 어울리는 곳이에요. 벨뷰다운 모던함 속에 따뜻한 향신료 냄새가 퍼져 있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행이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하이킹으로 자연을 가득 채운 하루, 그 끝을 Monsoon에서 마무리하니 하루가 제대로 완성된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시애틀 근교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이곳은 꼭 들러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어요. 비가 오면 더 좋은 곳이니까요.

 

주소:

📍 10245 Main Street, Bellevue, WA 98004 

 

 

 

 

이곳은 와인이나 칵테일등 주류를 곁들여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평점도 좋고 베트남 친구가 제대로 만든 음식이라고 인정한 맛집이니 가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는 또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